매쉬업벤처스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이공계 출신 인재 비중이 높은 VC입니다. 파트너 및 심사역 과반 이상이 컴퓨터과학, 전자공학 등 엔지니어링 전공자이며, 실제 투자도 AI, 로보틱스 등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공계 인재들은 여전히 VC를 현실적인 진로 선택지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경험이 부족해서 어렵지 않을까?", "기술 공부를 해왔는데 투자 업무와 연결될까?"와 같은 고민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런 고민에 답하기 위해, 이 길을 먼저 걸어온 투자자를 만났습니다. 매쉬업벤처스 박은우 파트너는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하고, 커리어 초기부터 VC 심사역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딥테크 스타트업 CSO를 거쳐 다시 VC로 복귀한 특별한 여정을 가진 투자자입니다. 그의 경험을 통해 이공계 출신에게 VC가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았습니다.
1. VC라는 커리어를 처음 인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VC 심사역이 500명도 채 안 될 때였고, VC라는 커리어는 굉장히 생소했습니다.
다만, 요즘 이공계 학생들이 젠슨 황이나 일론 머스크를 보며 창업을 꿈꾸는 것처럼, 저도 빌 게이츠 같은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를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창업에 성공한 후 또 벤처 투자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간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도 성공한 후에는 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건 학교에서 비영리 단체인 TEDxYonsei를 공동 설립한 경험이었습니다. 연사로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님을 모시게 됐고, 그 인연을 통해 이택경 대표님, 송영길 대표님 같은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에도 기술 창업에 성공한 뒤에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이후 2000년대 후반에 캘리포니아의 UC Berkeley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곳에서 함께 수업에서 공부하고 교류하던 지인들이 이미 고속 성장 중이던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하여, 당시 실리콘밸리가 주목하던 스타트업인 드롭박스나 팔란티어에 합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심에 뛰어드는 것을 목격하면서, 앞으로 한국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자체보다는 새로운 기술이 만드는 생태계 자체에 더욱 관심이 많아지면서, "나는 엔지니어로서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기술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 고민의 끝에 VC라는 직업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2. 많은 이공계 학생들이 "비경영 전공자는 VC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어떤 준비가 필요했나요?
저는 VC 입사를 위한 특별한 루트를 밟진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VC는 경력직이나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저도 "경험을 쌓고 나중에 가야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병역특례로 3년간 개발자로 일했고, 대학 경영혁신 학회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경영학을 처음 접했습니다. 전략 컨설팅, 빅테크 마케팅, 대기업 해외 신사업 등 여러 인턴십을 거쳤고,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서 데이터 분석 업무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변에서 "너처럼 관심사가 많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건 커리어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방향성이 없다"는 점이 약점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VC에 입문한 후 깨달은 건, 짧은 기간에 다양한 산업과 역할을 경험했다는 점이 오히려 늘 새로운 창업자를 만나고, 새로운 사업에 관심 갖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산업과 창업자를 편견 없이 마주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비경영 전공이라는 것이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출 수 있다면 그것이 VC에서의 강점이 됩니다
3. 이공계 출신으로서 VC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일까요?
스타트업의 전형적 정의는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입니다. 이공계 출신은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업자와 기술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큰 장점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는 문제를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VC 업무도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접할 때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공학적 분석 능력이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영역이죠.
무엇보다, 좋은 기술 창업자는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비슷한 고민을 해봤으며,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 합니다. 이공계 출신 VC는 그런 창업자와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빠르게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엔지니어 출신끼리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유대감과 신뢰라는 점에서 차별화된 강점입니다.
4. VC에서 딥테크 스타트업 CSO로 이동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게 VC는 커리어 후반부의 꿈 같은 계획이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우연치 않게 "꿈을 이루어서 꿈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 이후 VC 경험을 어떻게 의미 있게 확장할지 고민했고, 스타트업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VC 커리어를 나의 공동창업자를 찾는 과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투자 검토를 위해 만나는 창업자들을 보며 "내가 이 회사에 합류한다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국 투자했던 딥테크 스타트업 니어스랩의 CSO(Chief Strategy Officer)로 합류했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됐습니다.
5. VC 경험이 스타트업 CSO로서 전략 수립과 실행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저는 기술력은 있지만 아직 제품이 없던 딥테크 스타트업의 CSO로 합류했습니다.
그 전까지 VC로서 다수의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창업자들과 긴밀히 교류하며 사업 방향성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때로는 고객사나 잠재적 인수자와의 미팅을 주선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VC는 창업팀의 소속은 아니지만, 창업자의 사업 고민을 함께 나누는 파트너가 되어주고, 때로는 CEO staff처럼 일할 수 있는 포지션입니다. 더 중요한 건, 하나의 회사 내부가 아니라 다수의 회사를 외부에서 조망하며 사업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시야의 폭을 넓혀주고, 더 많은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날카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특히 초기 기술 창업팀은 아직 제품이 없거나 PMF(Product-Market Fit)를 찾기 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회사의 기술과 펀더멘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파는 세일즈가 아니라, 사업의 방향성을 정하고 실행하는 CSO 같은 역할은 창업자와 기술, 제품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이해 속도가 빠른 이공계 출신일수록 더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6. 스타트업 경험 후 다시 VC로 복귀하면서 투자자로서 어떤 관점의 변화가 있었나요?
창업자와 그들의 업에 대한 진심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도 초기 투자에서 창업자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스타트업을 경험하면서, 창업자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과정을 버텨내는 비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체감하게 됐습니다.
초기 창업팀의 계획은 아무리 경험 많은 창업자라도 계속 바뀌게 됩니다. 시장이 변하고, 팀이 변하면서 의도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이 스타트업입니다.
그 과정에서도 "업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창업자는 태풍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반면 아무리 똑똑하고 실행력이 뛰어나도 그 믿음이 약하면 무너지게 됩니다.
오늘날처럼 AI로 인해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6년여의 창업 경험을 통해 '좋은 창업자'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7. VC를 준비하는 이공계 학생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출발점'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경험을 쌓으세요. 저처럼 개발, 컨설팅, 데이터 분석 등 여러 분야를 경험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VC를 목표로 한다면,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 환경은 꼭 한 번 경험해보길 권합니다.
직접 창업을 시도하거나, 이력서를 위한 형식적인 창업보다는 실제로 검증받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학생 입장에서 어떤 스타트업이 좋은 회사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배울 게 없거나 심지어 문제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필터는 검증된 투자사(예: 매쉬업벤처스)가 투자한 초기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합류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스타트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좋은 창업자는 어떤 사람인지,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8. 매쉬업벤처스가 이공계 출신 인재들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이유가 있다면?
매쉬업벤처스는 전체 파트너 중 과반 이상이 공학 전공자이자 엔지니어 경력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런 구성의 VC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엔지니어 친화적이며, 엔지니어처럼 사고하는 VC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매쉬업벤처스는 젊은 이공계 출신 창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공계 출신 주니어 심사역에게도 의미가 큽니다. 회사의 전략적 방향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할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9. 초기 커리어를 VC로 시작한 분들 중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나요?
스파르타클럽(구 스파르타코딩클럽)의 창업자인 이범규 대표를 꼽고 싶습니다.
이범규 대표는 제가 창업 전에 근무했던 VC에서 함께 일한 심사역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병역특례로 개발자 커리어를 쌓은 뒤 VC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재학 시절에도 봉사단체나 작은 사업들을 경험했지만, VC에서 스타트업 생태계와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를 쌓은 뒤 스파르타클럽을 창업했고, 이를 멋지게 성장시켜 대형 Private Equity로부터 투자를 받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사업 확장 과정에서 VC 시절 알게 된 네트워크를 임직원으로 채용하며 팀의 역량을 강화하는 등, VC 경험이 창업의 성공 확률을 실질적으로 높인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마치며
VC는 이공계 출신 인재들이 기술적 강점을 유지하면서 시장 감각과 전략적 사고를 함께 기를 수 있는 곳입니다. 창업 준비를 위한 최적의 학습 경로를 찾는 분, 기술을 넘어 산업 전체를 보고 싶은 분, 전문직으로서 높은 성취를 원하는 분에게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선택지일 수 있습니다.
매쉬업벤처스는 그런 여정을 함께할 이공계 인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